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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하루, 소소한 안줏거리/음악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 Everest | 내 인생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감이 큰 인생곡...

by 답수 202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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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임장교 교육을 받던 6월에 허클베리피의 '점'이라는 EP가 출시되었다.

아직도 돌려 듣는 띵반!!! 매우 추천

 

당시 헉피형의 팬은 아니었지만 헉피형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랩바다하리를 알게 되었고, 분신이라는 어마어마한 클라스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허클베리피라는 래퍼에게 흥미를 가지던 시기와 '' EP의 출시가 겹치다 보니 당연히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선물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하는 어린애처럼.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지금도 앨범 단위로 돌려 듣는 명반이고, 지칠 때마다 나에게 항상 위로가 되어주는 고마운 음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에베레스트'라는 곡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음악이다. 아니, 그냥 이 노래의 모든 가사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 곡과 교감이 크다.

*TMI: 에베레스트는 15년도에 싱글로 먼저 발매되었던 곡이지만 점 EP에도 수록되어 있다. 같은 곡이긴 하지만 EP에 포함된 노래의 초반부에는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가사도 가사지만 일단 랩스킬과 무대에서의 흡입력에 감탄했었다. 이 노래를 접할 당시 내 나이는 24살이었고,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 생활을 하게 되는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가사와의 접점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이를 레벨업할 때마다 에베레스트가 나에게 주는 울림의 폭이 달라졌다. 현재의 나는 3년간 운영했던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20대 끝자락에 서 있다. 평소에도 자주 듣던 익숙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Everest는 NBA 파이널에서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 것만큼 큰 전율을 선사한다.

 

 

3년 전 처음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 팀원들과 '너는 어떤 집에서 살 거냐?', '차는 페라리를 사야지 ㅋ', '유니콘기업 가즈아~' 이러면서 허황된 얘기들을 주고받았었다. 가사처럼 꼭대기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희희덕거렸던 것이다. 길 앞에 놓인 시체들은 본체만체하면서.

 

창업을 할 당시, '마이리얼트립', '야놀자', '에어비앤비' 같은 카테고리가 비슷한 스타트업들의 성공담을 찾아보면서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가 정말 바늘구멍처럼 어렵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면서 부담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가지고 스타트업 성공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등산을 시작했다. 막연한 희망은 4명의 청년들에게 고난과 역경의 미래를 가렸었다.

 

가사에서 가장 공감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항상 남들이 갔던 길을 따라갔었다. 앞서 걸어간 선배님들이 남겨놓은 발자국을 가이드로 삼으면서 삶의 목표를 정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길로 들어서면서 먼저 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때 느꼈던 방황과 상실감은 잠도 도망칠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다.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 들어가서 보는 상사의 눈치 보다 내가 직접 이끌어야 하는 사업의 책임감이 훨씬 무겁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결국 현재는 팀원 중 한 명은 팀을 완전히 떠났고, 나도 개발자라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면서 방향을 틀었다.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멋있지만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냥 취업이나 했으면 어땠을까?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 인터넷과 서적으로 접한 정보들 또한 부질없게 느껴지며 현실의 혹독함이 눈보라만큼 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떨어지며 부정적인 생각들이 코로나처럼 빠르게 내 몸을 전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들이 전부 부정되는 것만 같고, 내 인생이 부질없이 보인다는 것이 버겁다.

 

지금은 창업에서 잠시 한 발 뗐지만 여전히 성공한 창업가의 꿈은 간직하고 있다. 개발자로써 성공해서 다시 도전하겠다는 '가짜 긍정'을 품에 안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스타트업을 그만뒀다고 얘기했을 때 내 친구들 반응은 다 '잘했어', '그래 지금이라도 그만둔 것이 잘한 선택이야'라고 위로를 해줬다. 친구들은 날 위해서 해준 말이겠지만 그것들이 지금 느끼는 상실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 꼭대기에 가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조언에 나는 두 귀를 틀어막았다.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조언은 독이라고 생각하면서.

 

역시 '가짜 긍정'을 좇는, 어찌 보면 어리석은 생각. 헉피형은 이 가사 부분을 '가짜 긍정의 끝'이라고 말했다. 호흡곤란이라는 부정적인 상황도 '어? 나 여태 숨 쉬고 있었네?'라는 긍정 마인드로 모면하는 것이라고.

 

'나는 창업으로 성공할 거야!' '아빠한테 좋은 차 선물해줘야지' '엄마, 누나! 내가 카페 하나 차려줄게' 내가 뱉은 말의 무게가 날 짓누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 괴로움에 무릎 꿇지 않고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착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정상에서 내가 원하던 것들을 내려다보는 상상. 정상에서 얻을 성취감, 미래에 대한 기대.

 

허클베리피는 꼭대기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음악하는 사람한테 꼭대기가 뭘까? 라는 질문에 멜론 1위? 음악 방송 1위? 그래미 수상? 그런 것들은 최대치의 결과가 아니고 중간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했다. 꼭대기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게 있기 때문에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우울한 노래지만 그 우울함 속에서 막연한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29살의 내 인생은 현재 암흑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결국 창업 포기라는 사실에 절망했고 꿈보다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 눈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난 그 상상의 노예, 그게 내 두 발을 잡아끄네. 오늘도 나는 새로운 목표를 기름 삼아 다시 한 발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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